시선이 교차하는 공간

#동양서림

"혜화의 추억이 모이는 곳"

1953년, 여섯 평의 건물에서 시작된 <동양서림>

브랜드 서점의 물결 속에서도 6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이 동네서점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혜화동 터줏대감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이는 이곳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소셜 플랫폼’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여러 시선과 추억을 공유한다.

간혹 지긋하신 노인분이 손자와 함께 찾는 경우가 있는데세대의 벽을 넘어 공유하는 추억이 있다는 것 만으로 서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비오는 날이면 서점에 가고 싶어진다. 세대를 이어 함께 책방을 찾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271-1
매일 11:00 - 23:00
동양서림

"다양한 시선을 나누다"

동네서점의 베스트셀러 서가는 브랜드서점보다 친근하다.

‘요즘 사람들’이 아닌 ‘동네사람들’의 취향을 확인하는 기분이어서 그럴까?

전시를 보는 것처럼 나름의 기획에 따라 배치된 책들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동양서림에는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독립서적도 구비되어 있어 재미를 더한다.

오가닉 라이프 브랜드 그린 블리스의 매거진이나 

술, 수영, 떡볶이 등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하는 <아무튼 시리즈>도 볼 수 있었다.

독립 출판물에는 할 말 하고 살아야 하는 작가들의

허심탄회한 스토리텔링이 눈에 띈다.

평범한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들을 

의자에 앉아 편히 접할 수 있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함께 읽는 서점"

동양서림에 들른다는 것은 단지 책을 산다는 것이 아니다.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시간, 그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서점 곳곳에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공간이 가득해,

모두 편한 표정으로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듯 책을 들고 있다.

마치 동네의 쉼터 같은 분위기이다. 이 서점에 함께하는 모두에게 어쩐지 동질감이 든다.

이러한 편안함이 걱정 없이 눈앞의 글자에 집중하게 만든다.

"서점 위의 서점, 위트 앤 시니컬"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면, 시집을 파는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나온다.

운영시간은 같지만 운영자도 방침도 다른 이곳. 다락방처럼 아늑한 공간에 시집이 가득 차 있다.

은은한 조명이나, 원목 사다리, 편한 책상 같은 요소가 숨어있는 다락방을 찾은 것만 같다.

책장에 뜨문뜨문 붙은 메모들은 주인이 시집과 관련한 생각들을 적어 놓은 것이다.

냉장고에 붙은 가족의 메모를 보는 듯 정감 간다.

전직 출판사 직원이자 현직 시인인 주인장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열두 평 방에 가득 차 있다.

비정기적으로 시인콘서트나 낭독회가 열린다는 설명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말소리 없는 소통이 가능한 곳"

서가 한 편의 책상에는 필사 노트와 함께 안내문이 놓여있다.

 시를 생각해보는 자리입니다. 앉아보세요.

 침묵 중에 마음 위로 이런저런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좋을 겁니다.

 연필을 깎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놓여 있는 시집도 읽어보세요. 마음에 드는 시가 있다면

 곁에 있는 노트에 옮겨 적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메모와 필사 노트를 통해 낯선 이와의 소통을 경험할 수 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누군가가 남겨둔 글에 공감하고 끄덕이노라면

서로의 속을 터놓은 기분이다.

생산성 없는 시간이 사치라고 말하는 요즘,

조급할 필요 없이 나에게 꼭 맞을 책 한 권을 찾아보자.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들고 서점을 나설 때면,

혜화의 오래된 서점이 내 기억 속에도 자리잡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P.S.오브코스의 시각

비와 서점
비에 어울리는건 파전과 막걸리가 아니라 서점이라고 주장한지 오래다.
바깥의 풍경과 햇살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된 독서 공간이지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촉촉한 소리로 가득찬다.
책과 빗소리에 빠져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Editor.이예림